"언젠가 한 방송에서 기자가 딸에게 ‘아버지는 어떤 분이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딸이 ‘아버지는 300년을 사신 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용태(79) 전 삼보컴퓨터 회장은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어려서는 조부의 영향으로 말을 배우는 동시에 한문도 배웠다. 이 회장은 “조부께서는 18세기를 살다 가신 분”이라고 했다.이 회장이 회상하는 할아버지는 새로운 문명이 들어 온 것에 대해 반대했을 뿐 아니라, 공부를 하면 왜놈이 되는 것이라며 학교도 보내지 않았을 정도로 완고한 분이셨다.그런 이 회장이 대한민국의 IT 역사를 만든 사람이 됐다는 점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것은 필연처럼 느껴진다.

 

 

 

“독학으로 공부를 했는데, 공부를 하면서 보니 제일 어려운 것이 물리학이었습니다. 그래서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어요.”한학에서 물리학으로의 전향은 ‘어려운 것에 도전해보자’는 그의 남다른 도전의식 때문이었다.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졸업한 그는 35세의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나섰다. 미국 유타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회장은 ‘이상액체’를 연구했는데 이는 실제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이론과 실험을 오로지 컴퓨터로만 했다고 한다. 그와 컴퓨터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1970년 인텔에서 처음으로 ‘메모리칩’을 만들었다. 그리고 71년에는 ‘프로세스칩’을 내놨다. 커다란 건물만 했던 컴퓨터가 책상 위로 올라올 정도로 작아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었다.“오늘 날 보면 역사적인 대사건이었지만 당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데스크탑을 만든 인텔에서 조차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이상하게 좋게 보였습니다.”당시 전자기술연구소(KIST)에서 전자계산기운영실장을 하던 이 회장은 연구원 100명만 지원해주면 3년 뒤에 컴퓨터 생산국을 만들겠다며 정부와 삼성 등 대기업을 찾아다니며 설득을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 가능성을 알아주지 않았다.결국 10년 뒤인 1980년, 이 회장은 직접 컴퓨터 제조회사를 만든다. 바로 ‘삼보컴퓨터’였다. 1996년에는 ‘두루넷’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인터넷 시대도 그가 열었다.18세기 교육을 받고 19세기 가정문화 속에서 20세기의 격동기를 겪고 가장 먼저 21세기를 열어간 사람, 바로 그렇게 이용태 회장은 300년, 4세기를 살고 있다.

 

2005년 삼보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4조원대의 매출을 올리던 삼보는 자회사였던 두루넷이 무너지면서 함께 무너졌다. 국내기업 중 미국 나스닥 상장 1호 기업이었던 두루넷이 쓰러진 것은 당시 복잡했던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파란만장했던 지난 날을 뒤로하고, 지금 이 회장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아이들의 인성을 교육하는 인성교육 전도자로서의 삶이다.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본적인 것에 엄청난 엉터리가 있습니다. 교육은 세상에 나가 제 구실을 하고 잘 살게 하기 위해 시키는 겁니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거죠. 거기서 지식이 차지하는 부분은 얼마 되질 않습니다. 인품·인격 등 사람으로 살아가는 능력이 더 필요하죠. 그런데 학교에서는 세상사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이 회장은 이미 우리나라는 ‘저질 국가’라고 단언했
다. 그는 몇몇 통계를 들었다. 강력범죄는 일본보다 70배가 많고, 경범죄는 일본의 44배(이 부분은 확실
치 않다고 했다), 고소·고발건수는 일본 보다 100배나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 교육열은 이성을 상실했습니다. 일류대를 나와야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부작용이 생깁니다.아이들이 세상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이 회장은 이스라엘 교육을 예로 들면서, 이스라엘의 초등학교는 교육목표가 시민으로 사회를 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했다. 따라서 교육과정도 지식을 가르치기 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것을 알도록 하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