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활동보도
line
 > 공지활동보도 > 새소식
새소식텍스트
제목 KBS1 [tv회고록 울림] - 2016 신년기획 이용태회장 편 방영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자 2016-01-09
조회수 1701
  • KBS1 [tv회고록 울림]  2016 신년기획(New Year Special) 
  • 25화/ 26화 :: 대한민국 벤처 1호 전 삼보컴퓨터 회장 이용태 (Dr. Lee, Yong-Tae,
                          pioneer of Korea's  IT business, former chairman of Trigem Computer)  
  • 방송일시 : 2016년 01월 03일(일), 10일(일), 오전 07:05 - 08:00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신년기획> 대한민국 벤처 1호 이용태 前 삼보컴퓨터 회장
           -  IT강국 대한민국의 일등공신 이용태 前 삼보컴퓨터 회장의 이야기 

     

    ▶ 대한민국의 정보화를 이끈 IT 선각자, 경북 영덕군 나래골 선비가문에서 태어나다!
     첨단 산업의 최전방에서 대한민국의 정보화를 이끌었던 이용태는 유교 전통이 살아있는 선비가문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지만 “일본이 세운 학교에서 교육받으면 일본사람이 된다!”는 할아버지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한학을 배웠던 이용태. “남에게 지고 밑져라”며 남을 위한 삶을 강조한 할아버지의 교육은 평생의 지침이 됐다.
     해방 후, 이용태는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극심해진 좌우대립 때문에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가족과 함께 서울로 가서 학업을 계속 하기로 한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교 편입시험에 입학한 이용태. 하지만 고향에 혼자 남아있던 어머니가 보낸 등록금을 받고 이용태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지저분하고 꼬깃꼬깃한 지폐를 보자마자 어머니가 이 돈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던 것. 자신의 학비 때문에 더 이상 어머니를 고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이용태는 독학으로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결심한다. 대학 입시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깜깜한 현실 속에서 하루에 4시간만 자는 필사의 노력으로 공부에 매달린 이용태, 그의 대학 입학시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 격동의 역사 속에서 홀로 자신을 갈고 닦아야했던 청년 이용태. 숱한 어려움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그의 젊은 시절이 에서 되살아난다.


  •  

    ▶ 힘든 고학생활 중에도 놓지 않은 학문의 꿈! 그리고 운명적인 컴퓨터와의 첫 만남 
     대학을 다니면서도 학비와 가족들의 생활비를 책임져야했던 이용태는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학업을 병행했다. “이지흠”이라는 예명으로 강사 생활을 했던 그는 독학으로 얻은 공부 비법과 명쾌한 강의로 단번에 인기강사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이용태는 인기강사라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여러 대학교에 강사로 출강하며 공부와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최초의 이학박사로 유명한 이태규 박사의 조수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 이용태. 엄격하기로 소문난 이태규 박사의 가르침 덕분에 이용태는 연구 활동과 공부 외에 일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빠듯한 생활비와 낯선 환경으로 이용태의 유학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용태는 이때 자신의 운명을 바꾼 컴퓨터와 처음 만나게 되는데……. 이용태의 우여곡절 많았던 유학생활 일화부터 컴퓨터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까지 을 통해 공개된다.
     

    ▶ “100명의 기술자만 주시오! 우리나라를 최고의 컴퓨터 강국으로 만들겠소”

    1970년대 초, 장차 컴퓨터가 세계 산업을 이끌어 갈 주인공이 될 것이라 생각한 이용태. 그는 정부와 대기업을 다니면서 “내게 100명의 기술자만 주면 우리나라를 최고의 컴퓨터 강국으로 만들겠다” 호소했다. 하지만 컴퓨터 산업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 정부와 대기업은 이용태의 말을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은행에서 한국에 반도체-컴퓨터 시범공장을 만들 지원금을 준다고 한 것. 이용태는 이 시범공장을 시작으로 한국에 최첨단 산업이 시작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기술자들이 자기들의 일자리를 만들려고 허풍을 떤다”고 생각한 정부에서 세계은행과 약속했던 공동출자자금을 지원하지 않은 것이다.
     화가 난 이용태 박사는 세계은행 담당자 막디 이스칸다와 함께 경제기획원에 찾아가 항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막디 이스칸다에게 “어디 은행 과장이 정부 국장에게 대드냐?” 며 문전박대를 할 뿐이었다.
     한국이 컴퓨터 산업 강국으로 올라갈 최고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 정부의 무지에 통탄을 금치 못한 이용태 박사. 결국 자신이 직접 나서 컴퓨터 회사를 만들기로 두 손을 걷어붙인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바로 삼보 컴퓨터. 이후 한국 벤처 산업의 전설로 남게 된 삼보 컴퓨터의 탄생기가 을 통해 펼쳐진다.

    .

    .

    .
    ▶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또 하나의 백년지대계 “인성교육” 

  •  lauching a far-sighted character education program for the happier Korea


  • 재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바쁜 삶을 살고 있다는 이용태. 그가 시작한 새로운 일은 바로 “인성교육” 이다. 한 달에 한번 찾아온 손자와 5분 이상 대화하는 것도 쉽지 않자, 새로운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가 고안한 새로운 인성교육법을 전국에 알리고 다닌 지도 벌써 10년, 2015년에만 12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용태가 고안한 인성교육법 강의를 들었다.
     이용태는 “인성교육은 영어나 역사를 가르치듯 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나 테니스를 가르치듯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용태의 인성교육법은 학생, 학부모, 노인들 심지어 군부대에도 도입되었다.
     한평생 아무것도 없었던 조국의 국력을 키웠으니, 남은 생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데 힘쓰고 싶다는 이용태. 에서 그의 인생 마지막 꿈이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