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행사가 잦았던 5월에는 특별히 많은 연서 친구 가족들이 가족 대화의 날에 참석했다. 그날의 행사는 중앙일보 부산ㆍ울산ㆍ경남판에 크게 소개되었는데 700여 명의 연서 가족들이 모여 봄꽃이 가득한 온천천을 서로 손잡고 걸었다. 이날은 마시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친구를 알게 된 잊지 못할 이야기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하루에 천 원씩 용돈을 준다. 학교 공부를 마치면 두 학원을 거친 다음 엄마 퇴근 시간에 함께 돌아오므로 간식비가 포함된 것이다. 골목길에서 매일 천 원이 부족한 아이들이었고 자꾸만 군것질을 하고 싶어했다. 이날 아이 아버지는 “월드비젼을 통해 해외 아동 한 명씩을 후원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의 군것질 버릇도 조절하고, 한두 번의 군것질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아이들이 일주일 동안 굶지 않아도 된다는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군것질을 하지 않고 참는 것이 어른이 되면 좋은 습관이 되고, 해외의 친구들이 이 담에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가 된다고 했다. 아이들 마음은 참으로 순진하고 따뜻했다. 그날의 마시멜로 이야기로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군것질을 줄이고 용돈을 모아 매달 해외 친구들에게 후원금을 보내고, 그들의 모습을 사진과 편지로 간직하고 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큰애와 작은애가 동시에 맞이하는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나름의 계획을 짰다. 학과 공부와 특기 적성을 길러주기 위한 공부, 그리고 독서가 주 메뉴를 이루었다. 오전에는 학원에서 보충지도와 선수학습으로 학업을 다지고 오후에는 축구와 수영, 피아노와 미술학원에 보냈다. 나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하루해가 빠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7월의 감화이야기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되게 하자’를 읽다가 문득 나는 나의 주인인가 하는 물음에 빠지게 되었다. 아이에겐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하고 고민했던 내가 정작 ‘나’ 자신에겐 어떻게 하고 있었는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 자신에게 투자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배움을 계속하지도, 취미생활을 하지도, 자신을 다듬지도 않았다. 머리는 녹슨 것 같고, 해마다 옷 치수가 늘어나고, 매일 똑같은 일에 싫증내면서도 오직 가족들 뒷바라지를 한다는 합리화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았다.

우선 아이들과 같이하는 운동으로 수영을 하기로 했다. 처음 며칠은 왜 시작했는지 싶을 정도로 밤만 되면 피로가 몰려 왔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가자 몸이 가뿐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분이 좋아지고, 좋은 기분은 아이들을 닦달하던 버릇을 없애 버렸다. 그리고 밤이 되면 아이들 곁에서 같이 책을 읽었다. 월 2권을 목표로 세웠고, 처음 힘겹게 시작했던 책읽기는 이제 자연스럽게 나의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고,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도 변했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말하지 않더라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부모의 역할이며 인생의 주인공인 ‘나’ 를 가꾸어 가는 것이기도 했다.

모두가 기다리는 저녁식사 시간은 느리지만 조금씩 변해 가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었다. 몇 달 전 같으면 밥을 차려 놓고 몇 번 씩 불러야 네 식구가 겨우 모였는데 지금은 서로 빨리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요즘 무엇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 친구관계는 어떠한지, 엄마ㆍ아빠의 모습은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우리 가정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무엇인지를 자연히 알게 된다. 특히 가족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가족 각자의 눈높이로 내 놓은 해결점들을 모아 공동의 해결력을 높여 갔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입장이 되어 봄으로써 가족들 얼굴에 미소가 늘어갔다. 우리 가족의 밝은 표정들은 시댁에도 친정에도 번져 갔다.

시어머니는 혼자 살고 계신다. 우리는 장남이고 같은 시내에 살고 있기 때문에 주말에는 시댁으로 온 가족이 가서 함께 식사를 한다. 반찬거리들을 사 가지고 가서 음식을 만들고 묵묵히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아이들이 “할머니께도 감화이야기를 해 드리고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자”고 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구나!

이제 주말을 가장 기다리는 분은 시어머니가 되었다. 손자ㆍ손녀들의 재롱과 어설프지만 늘어가는 이야기와 밝은 표정의 아들ㆍ며느리를 보는 것이 얼마나 즐겁겠는가!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것은 아, 이런 것이 효도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전 세계의 경기침체는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장 큰 문제점은 차량 2부제였다. 차는 출ㆍ퇴근 용도뿐만 아니라 필요한 식품을 사고 퇴근길에는 학원 두 군데에 들러 아이들을 데려 오는 데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이기도 한데 치솟는 유가로 인해 그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은 공공기관이라 차량 2부제를 철저히 지켰기 때문에,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라 학원에서 보호자가 직접 데리고 와야 해서 시간과 차비가 몇 갑절로 들었다. 그냥 참고 지내기에는 너무 손실이 많고 가족 모두가 힘들었다. 어느 주말 시댁에 갔을 때, 이 문제가 자연스럽게 식탁의 주제가 되었다.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데 뜻밖의 소식이 날아 왔다. 시어머니께서 우리들의 힘든 하루를 시동생에게 얘기를 하셨고, 결혼 자금을 모으고 있는 시동생은 자신의 거금을 들여 2부제의 구속을 받지 않는 경자동차를 한 대 사 주었다. 비록 중고이긴 했지만 이보다 기쁜 소식이 또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