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둘째아이를 임신 중이던 나는 다니던 직장을 휴직하고 집에서 가사 일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학교에서 ‘감화이야기를 통한 가정교육 제자리 찾기’에 대한 안내문을 받게 되었고 시간을 내어 참석하기로 했다. 직장생활에 쫓기어 딸아이 교육에는 크게 신경을 못 써 주기도 했고 수빈이가 3학년이 되면서부터 집에서 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듯도 하여 딸아이에게 부모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나의 전공은 유아교육이었고 많은 세월을 아이들과 함께 지내왔지만 막상 내 아이에 대한 나의 역할에 대해서는 크게 자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 이렇게 하고 있어요!
첫모임 때는 생각 외로 적은 인원 수의 어머니들만이 참석을 하였다. 김명희 선생님으로부터 모임의 취지와 방법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듣고 준비하신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읽은 후 줄거리를 요약하고 이야기에 대한 느낌을 나누었다. 4월의 이야기는 ‘5% 더 하고 덜 받기’에 대한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야기에 해당하는 경험담이 있으면 들려달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 모두는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다른 어머니들 모두 그런 듯했다. 선생님이 몇 가지의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는데 ‘아~ 그렇구나’ 그제서야 한두 가지 일이 떠올랐다. 그렇게 약간은 어색하고 약간은 낯선 분위기에서 집에 가서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볼 것과 가능하다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해 볼 것을 권유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의문이 들었다. 조금은 정형화된 듯한 느낌과 인위적인 생각도 들어 과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질지, 딸아이 또한 학교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처럼 여겨져 싫다고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이야기는 꺼내 봐야겠다 싶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주말에 아빠랑 시간을 내어 함께 얘기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괜찮네. 엄마! 나는 책 읽고 이야기하는 거 너무 좋아해!” 딸아이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족모임을 갖던 날, 수빈이는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고 나는 우리 딸이 저렇게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평소에 남편이 대화하기를 좋아하는지라 나름대로 수빈이와의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건 그냥 일상적인 대화였을 뿐이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회가 거듭될수록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러워졌고, 모임 자체가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요즈음은 감화이야기뿐 아니라 집안의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도 토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좋은 모임을 우리 가족만 만끽하기에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이달에는 언니네 가족과 함께 감화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다음은 지난 일요일에 언니네 가족과 함께 이야기를 진행한 내용이다. 참석 인원은 우리 가족 3명, 언니, 형부, 향기(남?중3) 혜영(여?초2) 이렇게 일곱 명이다. 이야기 내용은 11월의 ‘행복 이야기’와 5월에 있었던 ‘마시멜로 이야기’ 두 가지로 정했다. 그중 마시멜로이야기를 주제로 대화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먼저 초등학교 2학년인 혜영이가 이야기를 큰소리로 읽고 수빈이가 들은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마시멜로 이야기를 통해 느낀 점과 자기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기로 하였다. 먼저 언니인 수빈이모가 말하였다. “살면서 마시멜로를 참 많이 먹은 것 같고, 순간순간 지혜롭게 넘기지 못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마시멜로를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었는데 조금 더 참았더라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충동적으로 하지 말고 많이 생각하면 보다 능률적이거나 더 좋은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의젓한 향기의 말이다. 그러자 남편도 한마디 한다. “고등학교 때 적은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기타를 손에 넣어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너무나 행복했다. 그 기타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나 역시 둘째 은비를 낳고 살이 너무 쪄서 다이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저녁에 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노력한 결과 몸무게를 많이 줄였다. 덕분에 몸도 가벼워지고 음식에 대한 절제도 하고 있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졌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향기가 다시 한마디 한다. “친구가 하모니카 부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 나도 하모니카를 샀는데 잘 불어지지 않아요. 조금 참았다 내가 불 수 있는 다른 악기를 샀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응? 그건 마시멜로를 먹어버린 경우네.” 언니의 말에 우리 가족 모두는 웃음꽃을 피웠다. “자, 그럼 이 이야기를 통해 가지게 된 앞으로의 각오를 얘기해 보자.” “나도 마시멜로 이야기를 중요하게 받아들여서 돈을 아끼고 항상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돈을 지불하지 않고 저축을 하여 꼭 필요한 데 쓰도록 하겠습니다.” 수빈이가 또렷한 목소리로 각오를 이야기한다. “삶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꾸준히 참고 이겨내야겠다. 그 목표를 통해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목표는 원생이 100명 내외인 어린이집을 경영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나는 더 많은 경험을 쌓을 것이고 저축도 열심히 하여 3년 후에 작은 어린이집을 오픈할 생각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난 꼭 이겨낼 거라 믿는다.” “나도 오토바이가 너무 타고 싶어 여기저기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살까 말까를 망설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렸다 결정하자고 마음먹고 있을 때 아내로부터 작은 오토바이를 선물 받았다. 마시멜로를 빨리 먹지 않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만약 쉽게 결정하여 행동했었더라면 아마도 지금까지 그 오토바이 값을 넣고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의 각오에 형부가 경험을 더한다. 언니네 가족과의 첫 번째 모임은 이렇게 끝이 났다. 평소 우리 가족들만 할 때는 시간이 40분 정도 걸렸는데 첫날이고 사람 수도 두 배 많아서인지 1시간 반이 걸렸다. 토론이 끝난 후 간단하게 소감을 들었는데 언니 역시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얻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 달은 각자, 한 달은 함께 모임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은 어른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맺는 말
우리 가족은 이 감화이야기 프로그램을 통하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감화이야기를 통한 가족모임으로 인해 딸아이와의 소통의 장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대화하는 가정 분위기로 인해 웃음꽃이 피는 행복한 가정이 되었음에 감사한다. 많은 가정들이 몸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각자 다른 세상에서 다른 생각과 눈으로 살아가고 있다. ‘감화이야기를 통한 가정교육 제자리 찾기’를 통해 우리 가족은 정말 소중한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대화를 통해 가족이 함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변화를 통해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는 찾게 되었다. 보다 많은 가정에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를 소망하며 특히 먹고 살기 바쁜 맞벌이 부부들에게도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