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함께 읽을 이야기 ¯ 딸이 쓴 ‘나의 아버지 박수근화백’

강원도 양구에 가면 박수근미술관이 있다.
박수근화백(1914~ 1965)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누이와 어린아이를
즐겨 그렸던 화가로 미술관에는 박수근화백의 장녀 박인숙 여사가 아버지를 회고한 글 두 편이 전시실과 복도에 게재되어 있다.
이 글은 가난했지만 단란했던 우리의 옛 시절과 박수근화백 가족의 소박했던 행복이 잘 묘사되어 있어 가족의 달을 맞아 우리 모두 함께 읽어보고 가족의 의미와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싶다.
 
 

1) 아버지에 대한 회고
 우리 식구가 가장 행복하게 살았던 곳은 창신동 집이다.
모양은 단조로운 집이지만 우리 식구의 얼굴에 웃음과 꿈과 안식처가 되어주었고,
안방과 마루가 아버지의 화실이 되었다.
어떤 때는 윗목이 나의 차지라 추워서 이불을 푹 써야 코가 시리지 않았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께서는 일을 나가셨다 돌아오시면서 먼 곳에서 우리 집 용마루만 바라보아도 자랑스럽고, 식구들이 있는 집에서 그림까지 그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어머니께 가끔 말씀하셨다
 
 

2) 세상에 하나뿐인,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그림책 출간을 앞두고
    (‘박수근의 바보 온달’전에 붙이는 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난과 함께 아버지가 떠올라요.
우리는 참 가난했어요. 아버지가 그림을 팔아서 가족이 먹고 살았어요.
그때 아버지는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고 우리 집 살림은 늘 궁핍했지요.
아버지 그림이 팔리는 날이면 우리는 쌀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소금물에 밀가루 반죽을 뜯어 넣은 수제비를 먹곤 했어요. 밥보다 수제비를 먹는 날이 많았지요.
또 옷도 얻어 입은 적이 많았어요.

한번은 마을 반장 집에서 헌 옷을 얻어 와 입은 적이 있어요.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도우려고 보내 준 옷이었는데 여러 색깔이 무늬가 있는 옷이었어요.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저를 교무실에 세워 놓고 ‘인디언 소녀 같다’고 하셨지요. 저는 어린 마음에 그 말을 듣고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답니다.
가끔은 우리 집이 왜 이리 가난할까 속상할 때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가난 때문에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지는 않았답니다.
자상한 아버지 덕에 우리는 가난을 담담하게 넘기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늘 우리를 기쁘게 해주려고 하셨어요.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오실 때에는 한번도 빈손으로 오시지 않았지요.
아버지 큰 손에는 군고구마 몇 개며 엿가락이 들려있곤 했어요.
이런 저런 간식거리를 들고 있는 아버지의 손. 아버지 그 큰 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지요.
 
아버지는 정말로 자상하신 분이었고, 나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했답니다.
아버지가 챙겨주시는 것은 간식거리만은 아니었어요.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손수 그림책까지 만들어 주셨어요.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그림책을 사 주기 어려우니까 직접 그려주실 생각을 하신 거에요.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고 어머니는 이야기를 써 주었어요.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박수근의 바보 온달’은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아버지는 그림 책을 손수 만들어 주시기도 했지만 신문을 오려서 책으로 만들어 주시기도 했어요.
신문에 연개소문 소설이 연재되었는데 그것을 하나하나 오리고 붙여서 모아 두셨어요.
잡지나 신문에 실린 좋은 그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셨어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유명 화가의 그림을 오려 모아 화집을 만들어 주셨지요.
누런 종이에 하나하나 오려 붙여서 만들어진 책이고 화집을 넘기고 있노라면,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나는 아버지가 외출하고 나면 아버지가 쓰는 책장에서 동화책이며 화집을 꺼내 보곤 했어요.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직접 그려 주신 책을 읽고 또 읽었어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읽었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우리는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지요.
그러나 가난했던 시절보다 마음은 더 쓸쓸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가난했던 시절 아버지는 우리에게 꿈을 일러 주셨어요.
가난을 탓하기 보다 오히려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묵묵히 하시는 분이었어요.
아버지 덕에 저는 물질과 관계없이 마음을 가꾸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어요.
여러분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요.

아버지는 이제 유명한 화가가 되었지요.
아버지가 남겨 주신 책은 ‘박수근의 바보 온달’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고요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고 어머니가 손수 글을 쓴 그림책이 제게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책이었는데, 오늘날 어린이들이 읽기 편하도록 새로 써서 이제는 수 많은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된 거에요.
내가 할머니가 되어 내 손자, 손녀와 함께 이 책을 나누고 모든 어린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네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_ 2012년 4월 박수근의 큰 딸 
 
 

 
 

 
이 글을 읽으면 박수근화백 가족의 소박했던 행복이 부럽고 가난했지만 단란했던 옛날이 그립습니다.
일을 나갔다 돌아오며 먼 곳에서 집 용마루만 바라보여도 자랑스러워했고, 화실이 없어 안방과 마루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식구들이 있는 집에서 그림까지 그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던 박수근 화백.
자녀를 위해 손수 그림책을 만들어주던 자상한 아버지.

그리고 비록 가난했지만 가난 때문에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지 않고, 자상한 아버지 덕에 가난을 담담하게 넘기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아이들.

글 중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우리는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지요. 그러나 가난했던 시절보다 마음은 더 쓸쓸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라는 말이 오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꿈과 지혜, 그리고 행복한 추억을 심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회의]를 통해 자녀들과 이 이야기를 함께 읽고 느낌을 나눠보기 바랍니다.